SEARCH

비하인드스토리

내 생애에 가장 비싼 책

  • 털털이
  • 작성일 2007-09-28
  • 5919

크린장비나 크린룸관련제품들을 취급하게 된 과정에는 제품자체의 다양성만큼에 버금가는 별난 스토리들이 얽혀 있다.

지나고나서 기억을 추스려 보자니 벌써 꽤나 시간이 흘렀건만 아직도 그 때의 긴박감이나 황당했던 경험,

그리고 막연했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과정들이 바로 엊그제에 겪은 일들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뇌속의 메모리폴더에 지움방지태그가 걸릴만큼 당시의 시츄에이션이 심각,또는 절박했거나

현재의 상황에 영속성을 부여하는 동일 카테고리선상에 있기 때문이리라 여겨진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불과 10여년전만 해도 내가 이런 장비들을 개발하고 직접 만들어 팔 게 될줄은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취급하는 제품과 연관이 있어 관심을 갖게되고 영업과정에서 고객들의 문의에 수준을 맞추고자 노력하다가 보니

조금씩 전문지식을 갖추게되고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자주 접하는 제품들을 눈여겨 보게되니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데 개보다는 좀 더 진화된 두뇌구조를 갖고 넘들보다 조금 더 열씸히 들여다 본 결과

제품을 보는 눈이나 이론은 상당히 수준급이 되지 않았을까하고 자부해 본다.

그리고 우리 아이템 특성상 산업계전반에 안가본 데 없이 다 가 볼 수 있는 유리한 부분과 최첨단이니,

국내톱클래스기업이니 하는 곳에 설치되어 있는 잘 빠졌다는 장비들을 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도

절대적인 어드밴티지였다고 꼽을 수 있겠다.

기억에 남는 곳을 꼽자면 총맨 군인이나 청원경찰들이 쌀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고리 원자력발전소,

김해 대한항공 항공우주국현장,인천 소래의 한국화약, 그리고 부산반여동의 풍산금속등이 생각나고

규모가 컷던 장치산업들은 웬간한 데는 다 가보았던 것 갔다.

대표적인 기간산업체라는 Posco야 근무해 봤으니 포항,광양등 빠삭하고, 인천제철,연합철강등 쇠공장들,자동차3사,

조선3사,반도체3사(지금은 삼성과 하이닉스뿐이지만),웨이퍼가공공장,제과공장,음료공장,비료공장,사료공장,유리공장,김치공장,버섯공장,담배공장,화장품공장,타이어공장,소주,맥주,민속주등 술공장,정유4사의 울산 여천 대산공장및

석유화학플랜트,선경이나 코오롱,제일모직,동양나일론등 웬갖섬유공장,............

심지어는 여성생리대공장이나 닭,돼지,소등의 살처분장,쓰레기하치장까지...

하이닉스의 前身 현대전자에서는 내부직원들조차 출입이 거의 허용되지않은 청정도 Class 10 zone까지 들어가 보았다.

보안이 철저하다고 소문나 삼성반도체에서도 맘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현장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그들만의 헛점도

꿰차고 있었다.


비닐커텐하나가지고 혼자서 북치고 오줌떵 못가리던 사업개시 3년차인 93년도 가을로 기억된다.

온양에 있는 신도리코연구소에서 문의전화가 왔다.

카달로그를 보다보니 그 곳에서 검토중인 크린룸에 적합한 사진이 있어서 연락했는데 방문상담을 해달라고 했다.

크린룸? 크린룸이 모지?

지금이냐 네이버나 엠파스에 들어가 검색용어만 띄우면 필요한 지식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지만

90년대초의 한국의 수준은 정보나 지식의 공유나 전달체계는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답답해서 살 수 없을 정도로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서점의 전문도서코너에 가서 뒤적여 봤지만 이해를 도와 줄만한 마땅한 서적도 없었고 찔끔 찔끔 언급되어있는 내용들을 조합해보아도 도데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먼지나 입자를 어떻게 관리한다는 건지 명확한 感이 잡히지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본의 카달록을 꺼내서 몇번 숙지를 하고 일단 부딪혀 보자하는 심정으로 업체방문을 했다.

업체에서는 카달록의 사진을 제시하며 그것과 유사한 형태로 약 30평정도의 공간에 10만 클래스의 크린룸의 견적을 요구했다.

헉~스~극~

100클래스 1000클래스도 안해 본 사람한테 10만클래스라니~ 이거 우리회사를 너무 과대 평가해 준 게 아냐?

사실 클린룸의 보급초기인지라 선임연구원이라는 직책을 가진 업체직원도 전문지식을 가지고 상담을 한 것 같지도 않았고 나를 통해서 미진한 부분을 채워보려고 했던 의도도 있었던 것 같았다.

이렇게 하면 어떨지, 저렇게 하면 괜찮은 지, 또 이런 공정에 10만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냐고 반문도하고.......

한마디로 코미디였다.

가장 loose한 10만클래스를 반대로 엄청난 수준으로 벌벌 떨고 있는 사람한테 전문가입장에서 봤을 때 뭔가 도움이 되는 컨설팅까지 기대하였으니....

"예, 저는 영업파트라 기술적으로 좀 부족하니까 이해해 주십시요.

제가 현장을 잘 파악하였으니 돌아가서 저희 기술진(?)과 협의해서 지금 의뢰하신 내용과 문의하신 부분에 대한 답변을 견적서와 함께 빠른 시일내에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좀 미심적었던지, 시공실적이나 경험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 아 제가 입사한 지 얼마되지 않아 이 부분에 대한 답변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단 우리회사는 일본과 기술제휴가 되어있어 시공에 관해서 기술적인 Supprt를 받고 있습니다."라고 얼버무렸다.

당시 명함에는 기술영업부 과장이라는 직책을 새겨놓았었다.

마치고 그 회사정문을 나오는 데 얼마나 진땀을 뺐던지 다리가 다 후달거렸다.

오자마자 일본에 연락해서 크린룸관련자료를 최대한 다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시내로 나가서 종로서적등 국내에 내노라는 대형서점을 다 뒤지기 시작했다.

전문도서코너에 가서 물어 보았지만 말짱 도루묵이었다.

이틀동안 이잡듯이 뒤진 결과 다행히 교보문고의 외국서적코너에서 일본공기청정협회에서 만들어서

일본옴사에서 발간된 <클린룸핸드북>이라는 발행된지도 얼마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책을 하나 건졌다.

650페이지에 달하는 그 책에는 클린룸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듯 했다.

만세!

 


<크린룸 핸드북>

그 책을 발견한 순간 정말 무슨 보물을 찾은듯한 기분에 짜릿한 흥분이 되기까지 했는데 그것도 잠시,

뒤쪽에 태그를 본 순간 다시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 마이 갓~ 11마넌~ ~ ~ 만천원을 잘못 봤나하고 다시 봐도 분명 11만 몇천원짜리 정가표가 붙어 있었다.

원 시상에 전집도 아니고 진품명품-골똥서적도 아닌데 뭔 딸랑 책한권이 11마넌이나 한단 말인가?

당시 단행본 1권에 3~4천원정도, 노가다 하루 일당이 2~3만원정도였으니 기가 차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시 물가 수준을 감안해서 지금시세로 환산해 본다면 적어도 50 ~ 60만원은 족히 되리라.

오죽하면 계산대에 캐시어마져 가격이 잘못되지 않았나하고 사무실에 확인전화까지 했겠는가?

책의 정가가 14420엔, 당시환률이 600원대이니 교보문고마진붙혀서 곱하기 7.8인가를 했대나?

사야되나? 말아야 하나? 원래 책에 관한한 인색하지 편이었는데 이건 정말 딜레마였다.

한 한시간정도 책을 뒤적이며 고민을 하다가 결국 사고 말았다.

책도 딸랑 한권밖에 없었고 나중에 다시 오면 누군가 사가 버릴 것만 같았다.

11만원이면 전동드릴 3개를 사고도 남는 금액이었지만 분명히 그 이상의 역할을 해주리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이 책은 나중에 다시 700마넌가까이 지불하며 구입한 Particle-counter와 함께 보병이 절대 열세인 웅비에서

첨단 중화학무기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이전글expand_less
블루오션
다음글expand_more
아이템 개발과정(스윙도어 2편)